울님영상 ! 목포의 눈물!
목포에 계시는 우석벗님이 보내주신' 목포 八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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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암(儒山奇巖)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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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00여 미터의 나즈막한 유달산은 온통 기기묘묘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얼이 깃든 '노적봉'을 앞으로 하고 있는 목포의 산입니다.
1등바위, 2등바위,3등바위, 마당바위.... 그다지 특이하지 않는 이름의 바위에 올라서면 한눈에 목포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점점히 다도해를 배경으로 합니다.
입구에서 부터 꼭대기 까지 모두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산책길로는 그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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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설송(高島雪松)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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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다도해를 잇는 항구도시 입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그 섬고향을 찾아가는 뱃길 귀성객으로 만원을 이룹니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바로 앞에 위치한 섬입니다.
밤이면 대반동에서 바라보는 고하도의 가로등불빛도
이젠 목포의 멋진 야경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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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모종(達寺暮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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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보면 마당바위라는 넓다란 바위가 보입니다.
저 멀리 바다로 노을지며 지는 석양과 그 석양을 벗삼아
유유히 지나가는 제주도행 카페리호 그리고 달성사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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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청람(鶴島晴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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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나즈막한 삼학도 꼭대기쯤에선가 내려보이는 유달산을 배경으로하고
아늑히 둘러쌓여있는 목포내항의 전경은 일품입니다.
삼학도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한 남자를 사모하는 세자매의 이야기입니다.
그 누구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세 자매는 학이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여기에 생겨난 섬이 삼학도라고 합니다.
지금 삼학도는 복원한다고 했지만 아쉽게도 너무손상되어 옛모습은 사라지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그 전설만은 바람되어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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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추월(錦江秋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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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영산강에는 '동양최대'라고 자랑하던 다목적 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댐 덕분에 목포는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는 시기가 되면
선창가 사람들은 온통 긴장을 한답니다.
게다가 많은 갯벌이 없어 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산호에 뜨는 달빛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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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반조(笠岩返照)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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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는 그 이름대로 갓처럼 생긴 바위란 뜻입니다.
또 바로 갓바위 근처에 있는 해양박물관, 남농기념관, 문화예술회관, ....
멋진 가로등이 켜질때쯤 이 길을 지나 갓바위에 들어오면
영산강 하수둑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실수 있습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합니다.
도심 가까이 멋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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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춘우(牙山春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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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계절적인 특징은 봄과 가을이 짧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접해 있기 때문에 안개가 많은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안개낀 멋진 바다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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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귀범(龍塘歸帆)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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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섬들이 너무 많아 어찌보면 산만 보입니다.
대반동 바닷가 에서 보면 물건너 고하도가 보입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고하도섬 산꼭대기에 있는 전등이 켜져 멋있는 경관이 됩니다.
그 고하도 끄트머리 용머리를 돌아오는 배들도 보입니다.
먼 바다에서 마지막으로 고하도 용머리를 돌아오면 목포항이 보입니다.
고하도를 돌아서 보이는 목포의 각양각색의 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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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물아혜(勿阿兮)군이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무안군으로, 고려시대에는 물량군(勿良郡),
또는 무안군으로 불리웠다. 이러한 이름들은
지금의 목포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안군과 함께 더불어서 불렀으며,
오랜 세월동안 이 고장
의 행정구역은 여러번 바뀌었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나주목의 속현으로 이어왔다
「목포」라는 이름은〈고려사〉라는 역사책에서 처음 나오는데,
땅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木浦)라고 불렀다고하고,
목화가 많이 난다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으며,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하는 등의 주장이
있으나 이는 모두 근거가 없는 내용이다.
조선 세종21년 1439년에는 「목포만호」가 설치 되었으며,
임진란 때에는 목포 고하도에 이순신장군
이 친히 수군진을 설치하여 108일 동안 머물렀고,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은 개항 하였다. 그후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던 해의 10월 1일「목포부」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1932년에는 무안군 일부지역을
더하여 8.6㎢의 도시면적에 인구 6만인 전국 6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여
一黑(김), 三白(면화, 쌀, 누에
고치)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49년 8월 15일「목포부」를 비로소「목포시」로 고쳐 부르게 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항·무안 망운
국제공항 건설 등 SOC 투자촉진과 대불·삼호공단 조성으로 산업기반 시설이 확충되어
서남해안 시대의
중추기능을 담당한 세계로 웅비하는 미래의 도시입니다
佑碩 拜
'목포에눈물'
한영애님의 노래로 모셔왔습니다.
감상해 보십시요!.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