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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유교의 기본 경서인 오경(五經)의 하나로서 중국 고대의 시가(詩歌)를 모은 책이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중국 각 지방에서 유행하였던 노래의 가사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詩歌集)이다.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 의하면 "옛날에 시 삼천여 편이 있었는데, 공자(孔子)에 이르러 그 중 중복되는 것은 빼고 예의에 시행할 수 있는 것만을 골라서…305편을 뽑았는데 공자는 그것들을 모두 현가(弦歌)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곧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에 전해져 오던 3,000여 편의 옛 시를 근거로 하여 공자가 『시경』을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록 중 "옛날부터 전해오던 시 3,000여 편이 있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의심하였지만, 공자가 『시경』을 편집하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논어(論語)』『자한(子罕)』에서 공자는 스스로 "내가 위(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바로잡히고,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잡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경』 중에서도 『국풍(國風)』을 제외한 『아(雅)』·『송(頌)』은 공자의 손이 가장 많이 갔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송』에는 천자의 나라에서 쓰이던 주송(周頌)이 제후의 나라에서 쓰는 노송(魯頌)·상송(商頌)과 함께 들어 있는데, 정현(鄭玄)은 『시보(詩譜)』에서 노송과 상송은 특히 공자가 『시경』속에 편입시킨 것이라 주장하였다. 상송은 상나라 후손인 송(宋)나라 조정의 노래인데, 공자가 제후의 나라들 중에서도 송나라와 노나라를 특별히 존중하여 천자국인 주(周)나라 노래와 함께 나란히 『송』안에 편입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시경』을 비롯하여 육경(六經) 모두가 공자에 의하여 만인��� 교과서인 경(經)으로 확정되었던 것이므로 『시경』의 편자를 공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옛날 조정에는 채시관(採詩官)이 있어서 각 지방에 유행하는 시가들을 모아 놓았는데, 임금은 이것을 보고 민심의 동향을 살펴서 정치의 잘잘못을 알아 올바른 행정을 하였다. 또한 『국어(國語)』『주어(周語)』에는 지방 장관들이 천자 (天子)에게 실무를 보고할 때 각기 자기 고장에 유행하는 시가들을 모아 헌시(獻詩)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소대례(小戴禮)』『왕제(王制)』에는 천자가 각 지방을 순수(巡狩)할 때 각 지방 장관들은 시정을 보고하며 진시(陳詩)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채시·헌지·진시 제도로 인해 여러 지방에서 유행하던 노래들이 수집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시경』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크게 풍(風:또는 國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외에도 6편의 제목만 전하는 작품이 있는데, 남해(南)·백화(白華)·화서(華黍)·유경(由庚)·숭구(崇丘)·유의(由儀)가 그것이다. 이는 본래 가사가 없는 금곡(琴曲)이었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고, 진시황의 분서 때 없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후세에 가사가 없어져 전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으나 모두 확실한 증거는 없다. 어떻든 『시경』에는 대략 300여 편의 시가 실려 있기 때문에 흔히 『시경』을 '시삼백(詩三百)', 또는 '삼백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풍』은 여러 나라들의 민요란 뜻에서 흔히 『국풍』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주남(周南)·소남(召南)·패()·용()·위(衛)·왕(王)·정(鄭)·제(齊)·위(魏)·당(唐)·진(秦)·진(陳)·회(檜)·조(曹)·빈() 등 열다섯 나라의 시가 나뉘어 실려 있다. 따라서 이를 '십오국풍(十五國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풍』은 주대(周代) 여러 제후들의 나라에 유행하던 민간의 가요를 모아 놓은 부분이다. 주희(朱熹)는 그의 『시집전(詩集傳)』 서문에서 『풍』이란 '대부분이 이항(里巷)의 가요에서 나온 작품들로, 남녀들이 서로 노래부르며 각각 그들의 정을 표현했던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모두 1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황하(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에서 채집한 것이다. 십오국풍 중 앞의 주남과 소남은 이남(二南)이라 하여 여기에 수록된 시는 한수(漢水)와 장강(長江)에 이르는 남쪽 지방의 노래들이며, 또한 주남과 소남도 나라 이름은 아니므로 일부 학자들은 이남은 『국풍』에서 독립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나누어져 있다. 소아는 녹명(鹿鳴)·남유가어(南有嘉魚)·홍안(鴻雁)·절남산(節南山)·곡풍(谷風) ·포전(甫田)·어조(魚藻) 등 7습(什)으로 되어 있고, 대아는 문왕(文王)·생민(生民)·탕(蕩)의 3습으로 되어 있다. 습이란 10편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을 말���며, 이렇게 구분하여 묶은 것은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 『아』는 왕조를 중심으로 한 중원(中原) 지역에 유행하던 음악을 모아 놓은 것이다. 대체로 소아에는 조정에서 잔치를 할 때 부르던 노래의 가사들이 수록되어 있고, 대아에는 조정의 의식(儀式)에 쓰이던 노래의 가사들이 들어 있다. 따라서 『��풍』이 만가인데 비해 『아』는 대부분이 귀족들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에도 『국풍』과 비슷한 내용의 작품, 곧 이성(異性)을 그리워하는 시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생활의 괴로움을 노래한 시들도 몇 편 들어 있다. 이 때문에 대·소아의 구별을 음악의 성격적 차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아에는 74편(제목만 남은 6편 제외), 대아에는 3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문장면에서는 소박하면서도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국풍』에 비하여, 소아는 형식화된 경향이 두드러지며, 대아는 의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송』은 주송(周頌)과 노송(魯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송에는 청묘(淸廟)·신공(臣工)·민여소자(閔女小子)의 3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은 왕실에서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 그들의 공덕을 찬양하던 노래 가사를 모아 놓았다. 『시서(詩序)』 에는 “송은 훌륭한 덕을 찬미하고 그 성공을 신명에게 고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주희는 “송은 종묘에서 연주하는 노래이니 시서에서 말한 훌륭한 덕을 찬미하고 그 성공을 신명에게 고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송은 주나라 종묘에서 불리던 가사로 모두 3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노송의 4편과 상송의 5편의 시는 각각 노나라와 송나라 제후들의 노래이다.

『시서』에는 시의 육의(六義)에 대한 설이 있는데, 육의란 풍·아·송·(興)·비(比)·부(賦) 여섯 가지를 말한다. 풍·아·송은 앞에서 본 것처럼 시의 내용과 성질을 말하는 것이고, 흥·비·부는 시의 체재와 서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주희는 『시전강령(詩傳綱領)』에서 “부는 어떤 사실을 바로 서술하는 것이고, 비는 저것으로써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흥은 사물에 의탁해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국풍』과 『아』에는 정(正)·변(變)의 설이 있는데, 즉 정풍(正風)·변풍(變風)·정소아(正小雅)·변소아(變小雅)·정대아(正大雅)·변대아(變大雅)가 그것이다. 이에 관해 『모시서(毛詩序)』에서는 “왕도가 쇠함에 이르러 예의가 폐하고 정교(政敎)를 잃고 나라의 정사가 달라지며 집안의 풍속이 변해져 변풍(變風)과 변아(變雅)가 일어났다”고 하였다. 정현은 이를 설명하여 정치가 잘 되어 세상이 평화로웠던 시대에 나온 시들을 정경(正經)이라 하였고, 정사가 어지러워진 시대에 나온 시들을 변풍·변아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국풍』에서는 주남과 소남만이 정경이고 나머지는 모두 변풍이다. 소아는 녹명(鹿鳴)에서 청청자아(菁菁者莪)까지가 정경이고, 유월(六月)에서 하초불황(何草不黃)까지는 모두가 변소아이며, 대아는 문왕(文王)에서 권아(卷阿)까지가 정경이고, 민로(民勞)에서 소민(召旻)까지가 변대아이다. 『송』은 모두 정경에 들어간다. 변풍·변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도학자적인 입장에서 억지로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시경』을 읽을 때 정·변의 설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시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은 주송으로 서주(西周) 초기의 것이다. 그러나 노송 4편이 모두 노나라 희공(僖公:B.C.695~B.C.627) 때 작품이며 상송 5편도 송나라 양공(襄公;B.C.650~B.C.637) 때 지어진 노래라고 학자들이 고증하고 있다. 그 밖의 소아와 대아도 대부분이 서주 중엽 이후의 작품이며, 소아에는 동주(東周) 초엽의 작품임이 분명한 것도 들어 있다. 『국풍』도 대부분이 서주 말엽의 작품들이나 늦은 것으로는 춘추(春秋) 중엽(B.C.620년 전후)의 작품도 들어 있다.

『시경』에는 주대 각 지방에 유행하던 민요와 사대부 및 귀족·왕실 사이에 불리던 노래 가사가 실려있으므로 다른 어떤 자료보다도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감정이나 사회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곧 서민들이 살아가며 느끼던 기쁨과 즐거움 및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 있고, 한편으로는 지배 계층의 교육·문화·정치 등 사회 각 방면에 걸친 의식도 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시경』은 고대 중국 사회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시경』은 흔히 '국문학지조(中國文學之祖)'라 불리고 있다. 중국 전통 문학의 이론은 『시경』의 해석과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 문학론을 바탕으로 발전하여 왔고 문장 기교도 『시경』을 전범으로 하고 있다.

『시경』의 해설서로 가장 오래된 것은 전한(前漢) 초기 모씨(毛氏)가 지은 『모시(毛詩)』이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는 『모시』 29권과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 30권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시』는 당대(唐代) 공영달(孔穎達)의 『모시정의(毛詩正義)』를 통해서 전 해지고 있다. 『모시정의』 40권은 모씨의 『모시』를 근거로 하고 여기에 이를 보충 해설한 정현의 『전(箋)』과 공영달의 『정의(正義)』(또는 『疏』)가 덧붙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경』 판본이며, 가장 정통적인 해설서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시』에는 『시경』전체의 대의(大義)를 해설한 『대서(大序)』와 『시경』 각 편의 뜻을 해설한 『소서(小序)』가 있어서 『시경』의 이해와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성리학(性理學)이 발전하면서 『시경』을 읽는데 『시서』의 의의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주희의 『시집전(詩集傳)』 8권은 새로운 학문 경향을 대표하는 저술로서, 『시서』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근거와 견해를 가지고 해석을 가하였다. 『시경』에 관한 연구로서는 전한(前漢) 초기 삼가시(三家詩)라 부르는 신배공(申培公)의 『노시(魯詩)』, 원고생(轅固生)의 『제시(齊詩)』, 한영(韓)의 『한시(韓詩)』가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한시』는 당대(唐代)까지 남아 있었으며, 지금도 유일하게 『한시외전(韓詩外傳)』 10권이 전하고 있다. 주희의 『시집전』 이후 원(元)·명(明)에 이르기까지 시경학은 대체로 주자학(朱子學)에 근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청대(淸代)에는 실증적인 연구 방법이 성행하게 되자, 『시경』에 대한 실증적 훈고학적(訓學的) 방법에 의한 연구 업적이 많이 나왔다.

『모전』을 위주로 한 저술로는 호승공(胡承珙)의 『모시후전(毛詩後傳)』, 진환(陳奐)의 『모시전소(毛詩傳疏)』, 마서진(馬瑞辰)의 『모시전전통석(毛詩傳箋通釋)』 등이 있으며, 삼가시에 관한 연구로는 위원(魏源)의 『시고미(詩古微)』, 진교종(陳喬)의 『삼가시유설고(三家詩遺說考)』·『제시익씨학소증(齊詩益氏學疏證)』, 왕선겸(王先謙)의 『시삼가의집소(詩三家義集疏)』 등이 뛰어나다. 현대에 와서는 굴���리(屈萬里)의 『시경전석(詩經詮釋)』이 과학적이면서도 간결한 주석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시경』은 일찍부터 읽혀졌다. 조선시대에 와서 주희의 『시집전』과 『시전대전(詩傳大全)』이 여러 번 간행되었다. 선조 때 명찬(命撰)인 『시경언해(詩經諺解)』 20권과 정약용(丁若鏞)의 『시경강의(詩經講義)』 12권 등이 간행되었다. 서양에도 『시경』에 관한 주석서와 연구서가 있는데, 주석서로는 James Legge의 『The She-King』(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5), Arther Waley의 『The Book of Songs』(London, Allen & Urwin, 1937), Bernhard Karlgren의 『The Book of Odes』(Seocholn, Bulletin of the Museum of Far Eastern Antiquities Vol.14.16.18, 1942~1948) 등이 있으며, 연구서로는 Marcel Granet의 『Fetes et Changsongs anciennes de la Chine』(Paris, 1919)와 C.H.Wang의 『The Bell and the Drum』(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가 있다. 전자(前者)는 사회학적인 면에서 시를 민간의 제의(祭儀)와 신앙(信仰)에 결부시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며, 후자(後者)는 서양의 고대 민요 연구 방법을 『시경』 연구에 응용한 것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1445-3, 경상북도청

출처 :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글쓴이 : 한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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