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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최향기 2007. 6. 23. 23:17
아르튀르 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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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튀르 랭보 | 2004/03/30 (화)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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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 : 1854~1891)

1854년 벨기에 국경 근처 아르덴현 샤를빌 출생. 아버지가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으므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극히 조숙한 천재로서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초기의 습작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15세부터 20세 사이에 쓴 것들이다.
1870년 16세 때 샤를빌중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젊은 교사 이장바르에게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어머니와 평범한 시골생활에 대한 반항심에서 당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1870∼1871년 사이에 파리와 벨기에로 3번이나 가출하였다가 돌아왔다. 1871년 5월 그는 시인으로서 특이한 방법론적 각성을 경험하였다. 그는 이것을 이장바르와 친구에게 써 보냈는데, 그것이 《보는 사람의 편지 Lettres du voyant》(1871)이다. 그 해 여름에
는 12음절 100행으로 된 장시(長詩) 《명정선(酩酊船) Le Bateau ivre》을 썼으며, 1872∼1875년에는 그의 시경(詩境)의 도달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1872)을 발표하였다.

1871년 P.베를렌의 초청을 받고 파리에 갔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동성애로 발전하여 베를렌은 신혼의 아내마저 버리고 랭보와 동거생활을 하였으나, 경제 상태가 악화되자 자주 다투게 되었다. 결국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만취된 베를렌으로부터 권총에 맞았으나 무사하였다. 랭보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생활을 청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산문시《지옥의 계절》을 썼다. 그러나 1875년경부터는 차차 문학에 흥미를 잃어 네덜란드 ·자바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키프로스 등 여러 곳을 유랑하였다. 1880년에는 아라비아의 아덴으로 갔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교역(交易)에 종사하였다. 1891년 오른쪽 무릎의 관절염으로 프랑스에 돌아와 마르세유에서 37세로 사망하였다.
랭보의 프랑스원문 홈페이지 http://poetes.com/rimbaud/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1872,《보는 사람의 편지》1871,《명정선(酩酊船)》《지옥의 계절》

랭보 또는 타락천사

랭보 -댄디의 완성-
랭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에는 어딘가 천사같은 데가 있다. 천진함, 아무데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 우리 나라 문학사 안에서는 천상병이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랭보는 천상병과 많이 다르다. 랭보는 천상병처럼 무턱대고 천진하지 않다. 천상병이 천진무구한 농경사회적인 하얀 천사라면, 랭보는 꾀죄죄한 도시형의 잿빛 천사이다. 그의 날개에는 인간적 사실들의 먼지가 묻어있다. 명민하고 꾀바른 천사, 자기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징그러울 정도로 잘 알았던, 단 한 순간도 인식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던 똘똘이 천사. 어쩌면, 인식의 휘황함에 취해서 그는 천당에 갈 생각이 없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인식의 날개를 질질 끌고 다니며 땅과 지옥을 헤매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존재를 길게 연장했다는 점에서 그 날개는 너무나 매혹적인 것이었지만, 현실을 박차고 날아올라가게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날개는 힘겹고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무한을 한없는 경이 속에서 바라보았고, 직접 체험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향해 과감하게 길을 떠나지는 못했었다. 무한은 그에게 한번 있었고, 그리고 가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다시 회복되었다./무엇이? ㅡ 영원이./그것은 태양과 함께/가버린 바다.
이 천재적인 영혼은 그 명민성과 과감성에 있어서 가히 짝을 찾을 수 없을만큼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천재들이 그렇듯, 그는 얼마나 불행했던 것일까. 불평등해 보이는 이 세계는 결국은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은 재능과 함께 편안한 삶은 잘 허락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시대를 멀리 떨어뜨려놓고 바라보면, 천재들의 불행은 얼마나 휘황한 매력을 발산하는가. 그것은 凡人들의 펑퍼짐한 행복을 비웃는다. 따라서 랭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질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샤를르빌의 천재소년
1854년 프랑스의 소읍 샤를르빌에서 태어난 랭보는 소읍 특유의 숨막힐듯한 갑갑함과 드세고 압제적인 어머니의 구박을 시쓰기로 풀어내려 한다. 재능있는 모든 소년소녀들이 그렇듯, 언어는 일단 가장 편하고 돈도 들지 않는 형식 추구의 방편이니까. 벌써, 편안한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시골 부르조아들을 비웃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 볼품없는 잔디밭으로 잘린 광장,/나무들도 꽃들도, 모두가 규칙바른 소공원에,/더위로 목이 졸려 헐떡거리는 부르조아들이 모두/목요일 저녁이면 질투심많은 어리석음을 안고 보여든다. -[음악에게]  그는 담임선생 조르주 이장바르의 눈에 띤다. 이장바르는 훗날까지도 그의 시의 원고를 받아 보관하는등, 끝까지 그의 좋은 친구로 남는다. 초기의 랭보는 당시 프랑스 문단을 휩쓸고 있었던 파르나스 파(낭만주의의 지나친 흐트러짐에 항의하여 외적 절차탁마를 중시했던 시의 유파. 당시 서구를 휩쓸고 있던 르 콩트 류의 실증주의에 영향받았던 시적 객관주의)들에게 매혹당해 있었다. 그의 초기 시에서는 파르나스파의 영향이 읽힌다. 이 조숙한 천재도 출발 당시에는 어쨌든 당시의 대가들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소심한 문학지망생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대가들 중 이름을 남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870년 5월 24일 방빌에게 보낸 편지에서 랭보는 "파르나시엥들 사이에 작은 자리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한다. 1870(16세)년의 시들에서는 파르나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10월 말, 두에Douai에서 그는 폴 드므니Paul Demeny라는 시골의 젊은 시인을 알게 되는데, 그가 랭보를 위해서 랭보가 그때까지 쓴 것 중에서 중요한 시들을 두 권의 공책으로 정리했다. 그것이 <드므니 판>이라고 불리는 필사본이다. 첫 번째 공책은 구식 시들로 채워져 있다. 봄과 여름의 시, 긴 장광설, 익살스럽고 때로는 심술궂은 크로키들, 또 때로는 드물지만 부드러운 크로키들과 원한에 가득찬 정치시들. 그러나 두 번째 공책은 놀라운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어린 시인이 드문 자질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재능있는 모든 시인들이 그렇듯, 다른 시인을 모방하고 있는 초기 작품 속에서도 랭보는 이미 완전히 만들어져 있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시편에서 이미 드러나 있었던 일상적 범속함에 대한 거부는 훨씬 심화된 인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쟁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골짜기에 잠든 자]), 빈곤과 사회의 타락에 대한 분노([놀란 아이들]), 의미없는 억압으로 전락해 버린 종교에 대한 야유([첫영성체]).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겉보기에 순진해 보이는 이 무렵의 시에서 이미 훗날 랭보의 상표라고 할 수 있는 모험과 도취와 무한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름날 푸른 저녁이면, 나는 오솔길을 가리라,/말하지도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그러나 끝없는 사랑이 내 영혼 속에 차오르리라,/그리고 나는 가리라 멀리, 아주 멀리, 집시처럼,<자연> 속을, ㅡ여자와 함께인 듯 행복하게 -[감각]
또는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관능이./나는 네게 말하리, 네 입 속에./나는 가리,/여자아이 잠재우듯, 네 몸을 껴안으며./장미빛 어린/네 하얀 피부 아래 흐르는/파란 피에 취해 -[니나의 대답]
1871(17세)년 랭보는 파리 문인들과의 멋진 교류를 꿈꾸며 파리로 올라간다. 이 무렵의 랭보는 이미 전체적인 시의 방향을 결정해 놓고 있는 상태였다. 帝政과 사회의 몰락, 전쟁과 파리 코뮌의 잔학행위, 1870년의 패배와 그 결과는 랭보의 내부에서 반항을 혐오로 변질시킨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결함이나 추악함을 규탄하는 것이 헛되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그는 현실을 바꾸는 헛된 노력을 하느니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보들레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보이기만 하고 가지는 않았던 길. 랭보는 그 경계선을 돌파하려고 한다. 1871년, 파리로 올라가기 전에, 랭보는 이미 25개의 4행시로 이루어진 당당하고 다채로운 시 {醉船}을 완성한 다음이었다. 완전히 제멋대로 풀려나 미친듯한 방랑에 내던져진 배. 그 광란의 배는 바로 너절하고 타락한 현실세계로부터 단호히 등을 돌린 시인 자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자유와 도취. 폭발하는 관능. 냉담한 강을 따라 내려갈 때,/나는 배 끄는 자들이 나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나는 선원들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폭풍이 바다에 눈뜬 내 마음을 축복해 주었다.
바다에 빠져죽은 자들을 영원히 굴리며 노는 파도 위에서 /나는 병마개보다도 더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네, /열흘 밤씩이나, 항구의 등불들 그 멍청한 눈동자 따위는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醉船}
그러나 랭보에게 이 도취의 순간은 덧없는,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너무 많이 울었다! 새벽은 가슴을 에이고. 모든 달들은 잔혹하고, 모든 태양은 쓰라리다. 그렇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바닷속 깊이 삼켜져 사라질 것인가. 오 용골이여 부서져라! 오 나로 하여 바다로 떠나가게 하라! 그러나 한번 무한을 맛본 자는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취선} 이후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어쨌든, 랭보가 현실적 차원에서 어떤 혁명을 성취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글쓰기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미 확인했던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 잠들어있는 존재를 잡아채서 미지의 해안으로 집어던진다. 랭보는 글쓰기의 힘으로 존재의 상한을 얼핏 엿본 것이다.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엄청난 저주인가!  그러나 {醉船}은 단순히 현실에서의 혁명을 성취하지 못한 자가 비겁하게 내면으로 숨어들어 빠져든 자기 도취의 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취선} 안에서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자아 도취가 아니라, 오히려 격렬한 자기 부정이며, 기성의 문학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그는 문학적 방식으로 혁명을 성취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세계가 오건 말건 꿈쩍도 않고 낡은 시를 붙잡고 늘어지는 낡은 시정신과의 싸움. 맥빠진 낭만주의와의 전쟁포고. 타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결별. 클리셰와 장식적인 예쁜 시들을 놀리고 싶은 열망, 파괴적 패로디, 권력자들에 대한 소년의 공격성이 터져나온다. 결국, 우리는 {醉船}의 뒤에 <파리코뮨적>인 공격성이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시위자들에게 총을 쏘아댔던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 경멸이 폭발하는 에너지처럼 터져나온다. 정치적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펜을 든 손> 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는 문학적인 방식으로 죽어가는 노동자들 곁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육체로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그럴 것이다. 나중에 그는 가장 <끔찍한 노동>을 자신의 육체에 부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일단 그것은 문학적 혁명을 방법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단계를 거쳐간다. 이른 바 그 유명한 <모든 감각의 착란>이 방법적으로 세련되는 단계이다.

2 見者(voyant)의 시대
1871(17세)년부터 랭보의 시는 자신만의 확실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천재성의 발현만은 아니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의 착란>을 실천함으로써 그는 스스로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끔찍한 노동>을 부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아의 균열을 각오하고 자아의 자질을 존재의 피안까지 밀어붙이기. 스스로 견자가 되어 시적?실존적 혁명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아의 모든 자질을 있는대로 써먹기. 이 <끔찍한 노동>은 언어에도 미친다. 랭보의 모든 주석가들은 187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랭보의 새로운 어조에 주목한다. 언어에 가하는 폭력, 통사와 작시법에 가하는 폭력. 시의 이름으로 감행되는 모험. 존재의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기.
파리로 올라간 랭보는 언어의 혁명을 실존적 혁명의 차원에까지 연장한다. 1871년 그가 스승 이장바르에게 보낸 그 유명한 편지("나는 타자다Je est un autre"라는 구절이 들어있는)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지금 저는 스스로 갖은 방탕을 다 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저는 시인이 되고 싶으며, 그리고 견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문제는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서 未知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폴 드므니에게 써보낸 편지.
문제는 괴물스런 영혼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 내 이야기는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길고 엄청나고 이치에 맞는 착란을 통해 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온갖 방식의 사랑, 고통, 광기. 그는 스스로를 찾고, 자기 자신 속의 모든 毒을 다 써서 그 정수만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 그는 미지에 도달하고, 그리고 미친 놈처럼 되어, 마침내 자신의 비젼에 대한 이해력을 잃어버리게 될 때, 비로소 그는 그들의 비젼을 본 것입니다.
백 20여년 전에 쓰여진 열 일곱 살 짜리 소년의 글이다. 그 깊이와 명민함, 용의주도함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그 진정한 야심을.  실제로 두 해 동안 랭보는 온갖 못된 짓거리에 탐닉한다. 베를렌과의 불행한 동성애, 압생트주의 과음, 아편과 하시시 흡연... 그리고 변심한 베를렌을 향해 발사한 총탄. 살인미수. 이 모든 못된 짓거리를 그 자체로 변호하거나 비난하지는 말자. 다만, 그것이 <또 하나>의삶을 만들어낸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것이 지금 우리로 하여금 인류 역사상 가장 빼어난 시인 한 사람을 누리게 해주었다는 <문학적 결과>만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어쨌든, 그 덕에 랭보는 시학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현기증을 고정시키는> <새로운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므로 시인은 진정으로 불을 훔치는 자입니다. (...) 그가 저 세계에서 가져오는 것에 형태가 있으면 그는 형태를 주고, 그것이 무형이면 무형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의 언어를 발견할 것. (...) 이 언어는 영혼을 위한 영혼일 것이며, 모든 것을, 향기, 소리, 색채를 요약하며, 사고를 걸어 잡아당기는 사고일 것입니다.
랭보는 1873(19세)년 4월부터 산문으로 된 중요한 텍스트들을 쓰고, 그것을 브뤼셀의 Poot출판사에 맡긴다. 지난 2년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 같은 글이었다. 그 유명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이 탄생한 것이다. 훗날 모든 시인들에게 폭발의 핵처럼 여겨지는 이 시집은 그러나 발간 당시에는 53페이지짜리 소책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책은 끔찍한 망각 속에 잠겨버렸다. 훗날 베를렌은 이 배-시집이 "진수조차 되지 못했다"고 한탄한다. 랭보는 자비부담으로 재고분을 출판사에 요청했지만, 책은 배달되지 않았다. 돈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사라진 모든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이제는 불가능해진 시법에 대한 명석한 증언이다. "오 행복이여, 오 이성이여, 나는 하늘로부터 거무스름한 푸른 빛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빛 그 황금불티가 되어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자신의 모든 광기를 더욱더 규탄하고, 그 광기에 굴복해버린 자신을 책망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엔 내가 말할 차례다. 갖가지 내 광기 중 하나의 이야기다. (...)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발명했다! 언젠가는 모든 감각에 이해될 수 있는 시의 언어를 발명하리라 자부하기도 했다. 번역은 보류해 두었다. 우선은 습작이었다. 나는 침묵을, 밤을 썼으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적어 두었다. 나는 갖가지 현기증을 적어두었다. (...) 이어서 나는 내 마술적인 괴변들을 낱말들의 환각으로 설명했다!
조소적이며 비장한 마지막 작품 {작별}에서 랭보는 모든 시적 실천을 포기하고 그가 그토록 피하려고 애썼던 초라한 일상생활의 범속함 속에서 자신의 대담한 시도들을 억지로 속죄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모든 축제, 모든 승리, 모든 드라마를 창조했다. 나는 새로운 꽃, 새로운 별, 새로운 육체,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초자연적인 힘을 획득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내 상상력과 추억들을 묻어버려야 하다니! 예술가의, 또한 이야기 작가의 아름다운 영광이 하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마법사라고도 천사라고도 자칭하며 모든 도덕을 면제받았던 내가 추구해야 할 의무와 끌어안아야 할 거친 현실과 더물어 다시 흙에 돌아오게 되다니! 농부라니!
아마도 랭보는 지쳤던 것 같다. 그는 "나는 더 이상 말할 줄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랭보는 시와 끝장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시는 랭보와 끝장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는 랭보를 놓아주지 않는다.

3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 존재의 광채, 광채, 광채......
랭보는 1872년 경부터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시적 모험을 생각해 왔던 듯하다. 그것은 산문으로 된 시를 쓰겠다는 결정과 관계되어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일뤼미나시옹}이 {지옥에서 보낸 한 철}보다 더 앞서는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1872년 여름부터 랭보가 산문으로 시를 쓰겠다고 결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러 증언들이 그 사실에 부합된다. 그러나 일뤼미나시옹은 성요한의 복음서를 거꾸로 들고 반복음을 써내려는 욕망의 실현처럼 보이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너무나 다르다. 그것은 고요하며 찬란하고, 순수 환상을 실현하고 있다. 그 언어적 실현은 가장 극한적이며 가장 혁신적이다.
{일뤼미나시옹}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앞서는 것일까? 뒤서는 것일까? 어떤 산문들은 1873년 여름보다 앞서는 것 같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제르맹 누보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보다 명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는 데에 대체로 합의하고 있다. 1874년 초, 그들이 런던에 함께 체류했을 당시에 이 시집의 모든 것이 더욱 분명해졌으리라는 것이다. 이 눈부신 시집은 본질적으로 정신과 언어 양면에서 순수 창조를 실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중력, 모든 이성의 지리학으로부터 해방되어 오로지 상상력과 기억과 감각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순수 창조. <창조적 충동>에 떠다밀려 <현실의 외관을 전혀 갖지 않는> 희한한 세계가 창조된다. 공원은 훌륭한 솜씨로 다듬어진 원시의 자연을 나타낸다. 지대가 높은 구역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배도 없는 후미진 바다가 거대한 가로등 기둥들 늘어선 부두 사이로 푸른 싸락눈의 수면을 일렁댄다(...) 집들은 연이어 있지 않다. 교외는 야릇하게 들판으로 사라지고, (...) 거기서는 야성의 귀족들이 인간이 만들어낸 빛 아래 그들의 연대기를 사냥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아직도 <현실>에 대한 협의의 개념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시들은 관념의 소산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력은 관념이 아니다. 상상력에 의하여 소구된 현실은 협의의 현실 못지 않은 생생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 1차적 현실만을 현실이라고 믿는 미메시스교의 신도들이여, 이 시집은 100 년 전에 쓰여진 시집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재현>의 성실한 교도로 남아 계십니까? 이미지가 관념이라구요? 다음 글을 읽어보시겠습니까?
언어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표현이라기보다는 기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사물들의 그림자는 직접 우리들의 상상력에 투영되고, 그 홍채 위에 조색(調色)된다. (...) 시인은 또한 낱말들을 찾음으로써가 아니라, 반대로 자신을 침묵의 상태에 놓아둠으로써, 그리고 자연, 다시 말해서 <걸어 잡아당기는> 감각적 형질을 자기 위로 지나가게 함으로써 표현을 발견한다. 세계와 시인은 서로에 의해 드러난다.
이렇게 말할 때, 랭보는 벌써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칸트적 의미의 표상을 넘어서 존재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지는 파스칼적 의미의 갈고리처럼 우리 안에서 존재의 형질을 끌어낸다. 존재의 푸줏간에 걸려 있는 이미지에는 내재성의 곁살이 너덜너덜 달려있다. 그것은 우리의 거울이며, 우리는 그것의 거울이다.
이 어른거리는, 표류하는 언어, 서로 되비치며 서로를 규정하고 끌어당기는 언어, 무한히 증식하는 언어, 그 표류 안에서 그러나 존재들은 끊임없이 구성된다. 끊임없이, 이 윙윙 울리는 내면의 존재 공장에서.
황금 계단 좌석에서, ㅡ비단 끈, 회색 박사(薄紗), 녹색 빌로오드, 햇살을 받아 청동처럼 검어지는 수정 원반들 사이로, ㅡ은과 눈동자와 머리칼의 선세공으로 된 융단 위에 디기탈리스 꽃이 열리는 것을 나는 본다. -[꽃들]  그러나 랭보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그는 이 현란한 꿈을 꿈의 영역에만 놓아둔다. 그는 닥쳐오는 근대 앞에서 쓰러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성의 우뢰소리가 젊은 랭보를 대지에 내동댕이친다. 내가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너무나 아름다운, 내가 나도 모르는 힘에 의해서 내 손으로 창조해 낸 이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건 허상이다. 이건 헛된 꿈이야. 그뿐이야.
길 위쪽, 월계나무숲 가까이에서, 나는 아직도 겹겹이 싸인 베일째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조금은 그녀의 거대한 육체를 느꼈다. 새벽과 아이는 숲기슭에 넘어졌다. 깨어보니 한낮이었다.
랭보는 그리곤 시 쓰기를 집어치워 버린다. 그는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난 계속할 수 없었다. 계속했더라면, 미쳐버렸을 것이다"라고 쓴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곤 돈벌이에 몰두한다. 예견되는 종말이었지만, 그는 비참한 상태로 고향에 돌아와 죽는다. 알랭 주프르와Alain Jouffroy같은 좌파 시인은 그의 아프리카 탐험을 <생의 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옹색한 변명처럼 보인다. 주프르와와는 달리 랭보는 변명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그가 세계에 줄 수 있는 것은 19세까지의 시쓰기로 이미 다 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쓴 시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뤼미나시옹} 이후에 초현실주의자들의 법석이 있었다.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많은 시인들이 있었다. 지성이 발달한 극도로 명민한 시인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찬란한 세계를 다시는 복원하지 못했다. 랭보는 영원한 젊음의 신비, 영혼의 놀라운 자발성이라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어떤 영혼들이 랭보의 지하 물길을 따라 그가 가다 만 길을 갈 수 있을까? 내게는 어렴풋한 예감이 있다. 아니, 어쩌면 갈망 또는 희원일지도 모른다. 열망이 인간의 자질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맞는다면, 내 예감은 보답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랭보들은 영혼이 극도로 억압되었던 어떤 문명권에서 분출할지도 모른다. 현실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센 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말을 사용하는 자들을 무참하게 他者의 지옥으로 몰아넣는 문명권에서? 얄팍한 손끝재주가 언제나 진정한 재능을 잡아먹고 있는 문명권에서?  빛은 찾는 자를 찾아온다. 빛을 찾아 애통해하는 자들만이 천국의 문을 연다. 랭보의 잿빛 날개를 물에 씻어 희디흰 날개로 바꿀 자들은....... 랭보의 자질을 격세유전적으로 승계할 21세기의 시인들은 어디에선가 또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살리에리들의 질투에 가득찬 말의 박해가 그들의 연약한 영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일까?

랭보는 보들레르적 의미의 댄디적 이상을 구현했다. 그는 허공의 존재론을 문학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구체화시켰고, 그리고 그 이상에 의거하여 살았다. 이 타고난 비극적 천재성이자신의 생을 동원하여 이룩한 언어적 성과는 20세기 내내 프랑스 문화를 밝히는 지적 자산이 된다. 20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프랑스 철학자들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철학적 개념들은 거의 대부분 이미 랭보가 언어적 차원과 생의 차원에서 실험했던 것들이다. 한 명의 빼어난 시인을 가진다는 것은 따라서 한 문명 전체에게 두고두고 뜯어먹을 수 있는 정신적 먹을거리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프랑스의 행복은 바로 그런 것이다.
                                                                                 *출처: [아웃사이더] 창간호에서 부분 발췌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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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랑 생활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도시 위에 가볍게 비 내리네  
내 마음은 울고 있다네
도시 위에 비 내리듯 ;

이 우수는 무엇일까,
내 마음에 파고드는 이 우수는

오 부드러운 비의 소리여
땅 위에 지붕 위에

내 지겨운 마음을 위해
오 비의 노래여!

이유 없이 우는구나,
이 역겨워진 마음은.

뭐라고!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이유가 없구나.

가장 나쁜 고통이구나,
이유를 모르는 것은

사랑도 없이 증오도 없이
내 마음은 그토록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취한 배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더 이상 수부들에게 이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홍피족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색색의 기중에 발가벗겨 묶어 놓고서

플랑드르 밀과 영국 솜을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알 바 아니었어,

배를 끄는 수부들과 함께 그 북새통이 끝났을 때
나 가고 싶은 데로 물살에 실려 내려왔으니,

격하게 출렁이는 조수에 휘말린 지난 겨울,
난, 노아보다 더 넉넉한 골을 싸잡고

헤쳐 나갔지! 떠내려간 이베리아 반도도
그처럼 의기양양한 혼돈을 겪지는 못했을 거야,

격랑은 내가 항행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어,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나는 춤추었지,

끊임없이 제물을 말아먹는다는 물결 위에서,
열흘 밤을, 뱃초롱의 흐리멍텅한 눈빛을 드리지도 않으며!

셔츠를 짓찢을 듯
모진 겨울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