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놀기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최향기 2007. 11. 30. 00:05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이 영화의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은 참으로 이상한 얘기를 잘도 써내는 사람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1999), <휴먼 네이처>(2001), <어댑테이션>(2002) 그 어느 하나 노멀한 것이 없었다. 그의 시나리오는 뇌 속으로 들어가 보거나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등 예측이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단순 연애담일 줄 알았던 <이터널 선샤인> 또한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발렌타인데이를 기점으로 로맨틱코미디다운 달콤함으로 시작해 일상적인 연애의 풍경을 들려준다. 삶에 공허를 느끼는 소극적인 남자 조엘(짐 캐리 분)과 활달한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이 만나, 급속도로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은 운명이라는 단어에 어울린다. 둘만의 추억이 될만한 장소로 데이트를 떠나고 나란히 누워 별자리 얘기를 나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부러운 연애가 시작된다.  



그러나, 웃고 있어야 할 남자 서럽게 운다. 그리고 17분이나 지나서야 오프닝 크레딧이 스크린에서 점멸한다. 뭔가 이제부터 다른, 그리고 본격적인 얘기를 하겠다는 것? 역시나 영화는 일반적인 로맨틱코미디의 길을 걷지 않는다.



영화는 뇌 속을 걷는다. 아니 더 정확히 기억 속을 누빈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영화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아련함을 증명한다. 클레멘타인은 성격 차이로 다툼이 심하자 잊고 싶은 추억만 지워준다는 '라쿠나社'를 찾아 충동적으로 조엘과의 추억을 삭제한다. 조엘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도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지우고자 한다. 그러나 잘못한 일임을 깨닫고 기억 속에서 서로의 추억이 삭제 당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숨는다. 영화에선 이것이 신기하게도 말이 되게 펼쳐진다. 찰리 카우프만과 감독 미셸 공드리는 영화에서 표현의 한계는 없다는 경이롭고 뛰어난 증명을 해보인다. 영화는 만남으로부터 사랑이 부식되어 가는 시시콜콜한 연애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한편 이처럼 추상적 사랑의 본질과 기억들을 가시적으로 펼쳐 보인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 영화가 이상하리만치 이름 있는 연기자가 총출동하는 '초호화캐스팅'을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미셸 공드리가 흥행작을 낸 유명 감독도 아닌데(사실 뮤직비디오 연출계에선 유명인)말이다. 이 영화에서 짐 캐리는 새로운 면의 연기로 절실함을 더하고, 염색약 광고에 출연해도 좋을 다양한 헤어 칼라를 선보이는 케이트 윈슬렛은 사랑의 테마를 연기 속에 담아낸다. 또 한국에서는 적어도 싸이월드 스타인 키어스틴 던스트와 <반지의 제왕>서 유약한 소년이었던 일라이자 우드가 구레나룻을 기르고 기억될만한 연기를 펼쳐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며 이별 후 수년 뒤에 다시 만나 재결합하는 커플들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참사랑은 추억을 소멸시키지 못하고 끝까지 붙든다. 어떻게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잊고 살아간단 말인가.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그러므로 있을 때 잘하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과 추억을 오래도록 고이고이 쌓아가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건, 추억도 없이 사랑이라 이름 부르는 현대인들이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있기나 할까?  [★★★★]



※덧붙이기
이 영화의 원제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알렉산더 포프의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영화 속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읊조린다.




  - 아마도 이 영화와 한 약속을 기억한 사람은 한명 일 것이다.
    두명 이면 이렇지 않겠지.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The final scene





Beck - everbody's gotta learn some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