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름을울

별빛들을 쓰다

최향기 2013. 3. 2. 23:06

 

 

 

별빛들을 쓰다  / 오태환

 

 

필경사筆耕師가 엄지와 검지에 힘을 모아 철필로 원지 위에다 글씨를 쓰듯이

별빛들을 쓰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별빛들은 이슬처럼 해쓱하도록 저무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묵란墨蘭잎새처럼 쳐 있는 것도 또는

그 아린 냄새처럼 닥나무 닥지에 배어 있는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어린 갈매빛 갈매빛 계곡 물소리로 반짝반짝 흐르는 것도 아니고

圖章처럼 붉게 찍혀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별빛들은 반물모시 옷고름처럼 풀리는 것도 아니고

별빛들은 여리여리 눈부셔 잘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수평선 위에 뜬 흰 섬들을 바라보듯이 쳐다봐지지도 않는 것임을

 

 

 

지금 알겠다 초등학교 때 연필을 깍아 치자梔子열매빛 재활용지가 찢어지도록

꼭꼭 눌러 삐뚤빼뚤 글씨를 쓰듯이 그냥 별빛들을 아프게, 쓸 수밖에 없음을 지금 알겠다

내가 늦은 소주에 푸르게 취해 그녀를 아프게 아프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저 녹청綠靑기왓장 위 별빛들을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지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