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본 적 없는 어떤 곳에
내가 가본 적 없는 어떤 곳에
에드워드 에슬린 커밍즈(E.E. Cummings)
내가 가본 적 없는 어떤 곳
누구의 체험도 기꺼이 벗어난 곳에 너의 두 눈은 침묵을 지니고 있다.
너의 가장 가냘픈 동작에도 나를 에워싸는 것들이 있다.
또는 너무 가까워서 만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 자신은 손가락처럼 접을 지라도
너와 아주 적은 시선이 쉽사리 풀어 놓으리라.
마치 봄이(솜씨 좋게 신비롭게 만져) 첫 장미를 열듯.
또는 나를 닫고 싶어 하면, 나와 내 마음은
아주 곱게 얼른 닫힌다.
마치 이 곳의 마음의 사면에
조심스레 내리는 눈을 상상할 때처럼.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느 것도
너의 강렬한 가냘픔의 힘을 당할 수는 없다.
그 가냘픔의 결이 그것의 여러 나라의 빚깔로 나를 강압한다.
죽음과 영원을 숨결마다 가져오며.
나는 무엇이 열고 닫는 힘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단지 내 마음 속 무엇이
내 눈의 목소리가 모든 장미보다 깊다는 걸 이해할 뿐
아무도.
저 내리는 비조차도, 그런 작은 손을 가졌다.
현대 시인 Edward Estlin Cummings는 대부분의 시에서 구둣점을 생략하고, 대문자를 사용해야 할 곳에 소문자를 사용하며 구문을 정교하게 뒤틀어 놓습니다.
그는 동사를 명사로 전용하거나 명사를 동사로 전용하기를 즐기는데,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중 하나는 지나치게 단순한 어구가 우리의 지극히 복잡한 감정과 상태를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독특하고 기묘한 자신만의 언어의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구축한 언어의 세계 안에서 머물며 거기에 암묵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에서 일인칭 단수인 "I"를 소문자 "i"표기하여 언어의 허영에서 벗어나고자 한 점입니다.
심지어 단어의 철자가 음절의 수에 전혀 관계없이 한 행에서 다음 행으로 분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커밍즈는 Massachusetts주의 Cambridge에서 1894년 10월 14일에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Boston 소재 교회에서 목사로 봉직했고 동시에 Harvard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커밍즈는 1915년에 Harvard 대학을 졸업하고 1916년에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그는 Norton Harjes Ambulance Corps에 지원입대하여 프랑스로 파견되었으나 커밍즈의 친구가 보낸 편지를 프랑스의 검열관이 보고난 후, 커밍즈와 친구의 사상성을 의심하여 수용소에 수감시킵니다.
수용소에서에서 보낸 3개월 간의 경험은 소설 『거대한 방』(The Enormous Room)(1922)에 반쯤은 허구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영혼을 파괴하는 상황에서조차도 죄수들 가운데 특이하게 존재하는 끈질긴 용기를 찬양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커밍즈는 파리에 정착하여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에 전념하여 1923년에 첫 시집 『튜울립과 굴뚝』(Tulips and Chimneys)을 발표합니다.
그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복잡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관습에 빠져있는 사람에 대하여 반감을 느끼고, 이들에게는 'it'라는 적합한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사람들(mostpeople), 마이너스1의평방근(squarerootofminusone), 소위 생활수준(standardofliving)...etc 같은 뛰어쓰기를 무시한 표현이 많이 눈에 띄입니다.
기존의 언어 질서를 흔들어 놓으며 언어파괴를 일삼으면서도 자신이 정한 일정한 규칙내에서 머무는 대단히 혁신적인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1962년 New Haven의 Conway에서 사망했습니다.
출처: http://zarakseodang.com/zarak/zarak/zarak3.php?mid=9&p=4&r=view&uid=513 / 자락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