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름을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최향기 2016. 3. 29. 23:26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 1899년 8월 24일 ~ 1986년 6월 14일)은 아르헨티나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다.

1950년대 중반 보르헤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시력 약화 증세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글도 읽어주고 창작 활동도 도와주었다. 실명 상태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사가 바로 보르헤스를 모델로 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 호르헤는 장님 수도사로, 지식의 비밀을 수호하기 위한 살인도 불사하는 사악한 캐릭터 나오는데, 에코가 호르헤의 모델로 보르헤스를 삼은 이유는 특별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지 장님 사서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밝힌바 있다. 
출처:http://egloos.zum.com/kk1234ang/v/2317091



또 다른 호랑이(EL OTRO TIGR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한 마리 호랑이를 생각하네. 어스름은

분주하고 광대한 도서관을 예찬하고

서가를 아득히 멀어지게 하네

힘차게, 천진하게, 피투성인 채로 새롭게

호랑이가 밀림을, 그의 아침을 어슬렁거리네

이름모를 강둑 진흙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그의 세계에는 이름도 없고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지. 있는 거라곤 현재의 한 순간뿐)

야만적인 거리를 돌파하여

뒤얽힌 미로에서 코를 킁킁 거리며

새벽 내음과 사슴냄새를 맡네

나는 대나무 무늬 사이에서

호랑이의 풀무늬를 해독하고

전율이 일 만큼 멋진 가죽에 싸인 골격을 느끼네

지구의 둥근 바다와 사막은

헛되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네

멀고 먼 남아메리카 항구의 이 집에서

나는 너를 뒤쫓고 너를 꿈꾸네

아, 갠지즈강둑의 호랑이여

내 영혼에 저녁이 찾아들고

나는 생각하네. 내 시가 얘기하는 호랑이는

상징과 허상의 호랑이

일련의 문화적 비유,

백과사전에서 따온 것일 뿐이라고

해와 변화하는 달 아래

수마트라나 뱅골을 누비며

사랑과 빈둥거림과 죽음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그 치명적인 보석, 그 숙명적인 호랑이는 아니네

나는 상징들의 호랑이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진짜 호랑이를 대비시켜보네

물소떼를 몰살하고

1959년 8월 3일 오늘, 초원 위에

느긋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호랑이를 대비시키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세계를 추측하는

행위 속에서 그는 이미 대지를 떠도는 짐승 가운데

한 마리 살아있는 짐승이 아니라

허구가 되고 예술이 되어 버리네

우리는 세번째 호랑이를 찾으리. 이 역시

다른 호랑이들과 마찬가지로 내 꿈의 한 형태

언어의 한 체계가 되고 말테지만

모든 신화를 뛰어넘어 대지를 어슬렁거리는

진짜 척추동물 호랑이가 아닐테지만

나는 이를 잘 알고 있네

그럼에도 무언가 막연하고 무분별한

이 오래된 모험으로 나를 몰아가네. 그리하여

나는 오후 내내 또 다른 호랑이를, 시 속에서

살지 않을 호랑이를 찾아 나서네.





호랑이들의 황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노란 일몰의 시간까지

나, 얼마나 바라다 볼 것인가

철책 안에서

자신의 감옥에 대한 의심조차 없이

주어진 운명의 길을 서성이는

저 권능의 벵갈 호랑이를.

나중에 다른 호랑이들이 올 것인가

블레이크의 불 호랑이가.

그 뒤로 다른 황금들이 올 것인가

제우스였던 사랑스러운 금속이,

아홉 일 밤마다 아홉 개를, 아홉 개가 아홉 개를

낳는, 그리고 끝없이 낳는

반지가.

다른 아름다운 색들은 세월과 함께

나를 두고 떠났느니.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공허한 빛과 착잡한 그림자

그리고 처음의 황금뿐이니.

신화와 서사의

오, 일몰이여, 오, 호랑이여, 오, 빛이여,

그 손을 갈망하던 그대의 머리카락이여,

오, 더없이 소중한 황금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