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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화]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전쟁과 평화 - 매파와 비둘기파 ..

다투느냐 사이좋게 지내느냐라는 명제를 놓고 선호도를 조사한다면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평화쪽을 선택하지 않을까.

 

그런데 체질적으로,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운명적으로 - 애시당초 평화보다는 전쟁을

화목하기 보다는 투쟁하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라난 환경이 성격을 그렇게 만들어서..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간혹은, 절망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인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나, 별 차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형제간에도

경쟁과 투쟁을 좋아하는 자식이 있고 화해와 평화를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자식이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인간의 존재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평화란 너무 지루한 것이니까..

그걸 아는 신화의 작가들은 절묘하게도 그런 인간들을 창조하여 이야기를 늘려놓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건 

체질이나 유전이라기 보다는 운명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다.

(신화에 의존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신화에 종종 쌍동이가 나오는데, 어떤 쌍동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우애가 좋았는가 하면

어떤 쌍동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등을 돌리고 으르렁거렸다.

이제 그 두쌍의 쌍동이 얘기를 할 참이다.

 

쌍동이 얘기를 꺼내기 전에 '너무나도 심심하여 인생이 고통스러웠던' 한 여인의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쌍동이가 뱃속부터 다투거나 우애가 좋으려면

그 자궁을 지닌 어머니 얘기를 안할 수가 없으니까.

 

먼저 얘기할 어머니의 이름은 안티오페다.

카드메이아라는 나라를 다스리는 닉테우스 왕의 딸이었는데 - 나면서부터 공주 신분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공주처럼 살았다.

탐미주의자 닉테우스는 성격적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특별하고 고상하고

고급한 삶, 요즘 말로 하자면 우아한 부르조아의 삶을 즐겼다.

조화되지 않는 것은 무엇도 용납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비뚤어진 것 끈적한 것 못생긴 것

시끄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을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끈적한 땀냄새나 소음이 싫어 스포츠나 전쟁도 싫어했다. (참 동양적이다) 

 

이처럼 티끌 한점 없는 무공해 환경을 갖춰놓고 고상한 왕 닉테우스는 매일매일 난초 잎을 닦듯,

하나뿐인 공주 안티오페를 애지중지 길렀다.

운이 좋았지. 교양공주 안티오페에 걸맞는 청년까지 맞춤하게 찾아내 짝을 맞춰주었으니

닉테우스의 삶은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지상천국은 없는 법이다.

신화가 그런 법칙을 벗어나는 일도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련은 시작된다.

그 시련은 안티오페로부터 시작되었다.

 

한점 흠잡을 것 없는 구중궁궐에서 한점 흠잡을 것 없는 완벽한 신랑의 사랑을 받으며

완벽한 하루를 보내던 안티오페에게 문득 싫증이 찾아왔다.

너무나 완벽한 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느끼게 된 것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안티오페 자신도 알수 없었다.

아무튼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매력적인 자기 현실이 괜시리 짜증스럽고 지루했다.

한번 지루하다 생각하니 그 지루함은 하루가 다르게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변해갔다.

아무 부족할 것 없는 귀족의 생활을 즐기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로병사의 현상을 눈치채고는

끝없는 번뇌에 사로잡혔던 싯다르타의 변심이 그랬을까.

안티오페 역시 - 싯다르타가 그랬듯 - 완벽의 성 바깥쪽에 존재하는 자연 본연의 비밀에

자꾸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루한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어" 언젠가부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안티오페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이 없는 거칠고 투박한 자연을 찾아 나들이를 시작했다.

덤불을 헤치고 숲을 헤매고 다니면서 전혀 교양이나 청소나 장식과는 거리가 먼

원시자연의 동물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 원시세계 사파리 투어의 결말은 어땠을까.

짐작되고 걱정되다 시피.. 안티오페 공주의 자발적인 와일드사파리 투어는 역시 

질서를 깨뜨린 일탈의 모험으로 이어진다.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괴물은 때에 전 털복숭이에다가 지독한 악취를 풍겼고

털속에 살짝 드러난 얼굴 거죽에는 주름이 가득했으며, 걸음걸이조차 뒤뚱거리는..

그리하여 고상한 안티오페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였다.

이 괴물은 일종의 사티로스인데, 인간도 동물도 아닌 존재지만 - 과분하게도

안티오페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운을 누린다.

아니,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건 아니다.

더럽고 투박한 것을 향한 호기심과 너무나 잘 정돈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원하는

안티오페에게 모험의 대상으로 찍힌!! 것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안티오페는 숲에서 마주친 괴물과 관계를 맺었다.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깨끗한 침대에서, 교양 있는 남편 곁에 누워 잠을 자고 난 뒤

다시 해가 뜨면 거친 숲으로 들어가 사티로스와 짐승적으로 격렬한 의식을 치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흰 드레스를 잔뜩 더럽혀 돌아오는

딸이며 신부를 보고, 아버지 닉테우스와 남편 에포세우스는 왠지 가슴이 시렸다.

"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거요." "숲에서 산책을 하고 왔어요."

"오늘은 함께 가봅시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니, 그러지 않는게 좋아요."

그렇다고 아버지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나 남편이 잘못한 것이라곤 한 개도 없었다.

그러니 에포세우스가 다정한 음성으로 걱정을 해주면 해줄수록 마음이 산란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괴로움을 못견뎌 안티오페는 스스로 예언자를 찾아간다. 신화에서 예언자는 중요한 존재다.

 

"조심해요, 안티오페. 흉측한 것과의 만남에는 고통이 따를 테니까."

요즘 점쟁이들도 이런 문제로 찾아오는 여자들에겐 반드시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이제 그쯤 했으면 놀만큼 놀았잖아? 문제 생기기 전에 남편에게로 돌아가야지. 아직 안늦었어."

하지만 밖으로 정신 팔린 사람에게 그런 말은 하나마나다.

 

"고통이라고요?"

"지루함 보다 더한 고통은 없어요."

사태의 결말을 예상할줄 아는 현명한 독자들은 지금 안티오페가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과를 당해봐야 해.' 꼬인 마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안티오페는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와일드 사파리의 모험처럼 그녀의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즐거운 일을 안티오페는 일찌기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루한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어."

안티오페는 다시 숲으로 가서 냄새나는 사티로스 괴물과 향연을 즐겼다.

쾌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정사였다. 사티로스가 냄새나는 입을 열어

천박한 말로 사랑(이랍시고)을 속삭이면 안티오페는 진저리를 쳤다.

그래서 일을 마치면 후회스런 감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으로 돌아왔다.

하건만.. 성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지루해 죽을 것 같았고, 밤이 되면 어느새 그 역겨움이 그리웠다.

 

안티오페가 스스로 결단(?)을 내린 건 얼마 안돼서였다.

후회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녁에 이를 닦다가 구역질이 났다. 덜컥 겁이 났다.

어차피 더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안티오페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나를 사랑하지요?"

얼마만에 들어보는 사랑의 고백인가. 에포세우스는 반갑게 아내를 끌어않았다.

"그래. 사랑하고 말고.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수 있어."

"그렇다면 나와 같이 성을 빠져나가요. 어디로든 멀리 도망쳐요. 당신이 필요해요."

"아, 그래요. 당신이 원한다면."

착한 남편은 망설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멀리 달아날 만반의 채비를 맡겨놓은 뒤 날이 밝자 안티오페는 다시 숲으로 갔다.

아무리 괴물이지만, 아기까지 가진 마당에 헤어진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당신의 아기를 가졌어요."

안티오페가 말을 꺼내자 사티로스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쌍동이를 낳게 될 거야. 네 몸 속에 쌍동이가 들어있어."

안티오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걸 어찌 아나요? 당신은 누구죠?"

가끔 통성명도 하기 전에 사랑부터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안티오페는 아기를 배고서야 이 괴물의 정체를 묻고 있다.

"그런 질문은 아주 위험한 짓이야."

괴물이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당신 누구세요. 그 더러운 털 속에 숨어있는 당신의 진짜 모습은 누구냐고요?"

심상치 않은 느낌에 공주는 부르짖었다.

"진짜 내 모습을 보고 싶으냐? 멋진 모습을 진정 보고 싶단 말이냐?"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그게 누구였을까.

안티오페는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떨더니 휙 뒤돌아 숲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렇다. 지금까지 난 속고 있었어!

그녀도 눈치를 챈 것이다. 천하의 바람둥이.

여자를 취하기 위하여 그 어떤 모습으로든, 심지어 가장 추악한 괴물의 모습이라도

주저없이 변신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바람둥이 - 제우스였다.

(우리는 그가 바람둥이의 원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언젠가 잘 정돈된 닉테우스의 성에서 백설공주처럼 청초한 안티오페의 모습을 한번 보고

마음에 든 제우스가 헤르메스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어떻게 해야 저 고상하고 교양 자체인 안티오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겠니?"

그때 헤르메스가 조언했다.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괴물로 변신해서 접근해 보세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헤르메스는 그 무렵, 안티오페가 너무나 완벽하고 정돈되고

너무나 깔끔한 세상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조만간 가장 무질서하고 거칠고 더러운 세상을 찾아 와일드 사파리 투어에 나설 것도 예견했다.

암튼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빚을 졌다.

 

안티오페는 준비하고 있던 남편 에포페우스와 함께 허겁지겁 성을 빠져나갔다.

 

본래 행복은 지루한 것이다.

지루함을 참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 행복을 길게 누릴 수가 있다.

지루함을 고통이라 불렀던 안티오페의 모험과 일탈과 -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배신은

이들이 누려온 행복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려버렸다.

예언자가 예고한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고상하고 우아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던 닉테우스 왕은 말할 수 없는 환멸에 빠졌다.

우아하고 점잖은 짓은 이제 포기하기로 했다.

달아난 딸과 사위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에 방을 붙인 것으로도 모자라

손수 추적에 나서기로 했다.

 

전쟁이나 살상 파괴 따위는 모르고 살던 왕인지라 형 리코스를 찾아가 상의했다.

화는 어떻게 내는 거유? 싸움은 어떻게 하는 거유? 심판을 어떻게 하면 좋겠수?

형제라고 해도 다 같은 건 아니다. 형은 성깔이 좀 있었다.

"그런 것들은 가만 두면 안되지"

조언과 함께 자기 군사들을 풀어 두 사람을 잡아오라고 했다.

교양덩어리 에포페우스도 그리 싸움을 잘 하는 사내는 아니었다.

추적병들이 달려드는 걸 보고 엉겁결에 단검을 집어 던졌다.

그랬을 뿐인데 그만 어설픈 단검은 용케도 휙 소리를 내며 날아가더니

병사들 뒤를 따라오고 있던 닉테우스 왕의 가슴에 꽂혔다. 이런 게 운명이다.

 

남편이 아버지를 죽였다.

지루해서 고통스러웠던 안티오페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일단 두 사람은 달아났다.

그 사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닉테우스는 형의 품에 안겨 유언을 남겼다.

- 원수를 갚아주세요.

 

싸움을 좋아하는 형이었다. 리코스는 두 순진한 젊은이를 말로 꼬드겨 숲에서 나오게 했다.

- 죽고 죽여서 무슨 이익이 있겠니. 마지막 남은 혈육인데 말로 풀어보자.

순진한 젊은이들이 숲에서 걸어나오자, 큰 아버지는 기회를 노려 에포페우스의 목을 쳤다.

혈육이자 임신부인 안티오페는 목에는 쇠사슬을 걸었다.

그리고는 동생을 죽인 조카딸 안티오페를 노예처럼 끌고 다녔다.

가장 더럽고 찢어진 옷을 입히고 신발도 한쪽에만 신겼다.

한쪽 뿐인 신발은 신화에 종종 등장한다. 가장 우스꽝스런 모습의 상징이다.

끌려다니다가 아기도 길가에서 낳았다.

걱정한 바와 달리.. 아기들은 제우스의 자식 답게 준수했다.

 

두 쌍동이는 나면서부터 서로를 끌어안고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바로 전쟁과 평화의 한쪽 주인공이 될 '화목한 쌍동이'들이다.

안티오페가 잠시 젖을 물리며 아기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를 돌볼 수 없으니 서로 잘 감싸주며 살아야 한다.

너희들의 이름은 암피온과 제토스다. 부탁한다 아가들아."

안티오페는 젖이 뚝뚝 떨어지는 가슴을 감싸쥔채 다시 목줄에 끌려 리코스의 성으로 향했다.

 

이제 전쟁과 평화의 쌍동이들 얘기는 시작이다.

그런데 여기서 쌍동이 얘기로 바로 들어갔다가는 원성을 살 것 같다.

그 어미 얘기만으로도 너무 길었다.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

 

그래도 안티오페 얘기는 마무리 하자.

 

잔인한 왕 리코스는 그녀를 자신보다 더 잔인한 왕비 디르케에게 넘겨주었다.

디르케는 안티오페를 지하토굴에 가둬놓고 날마다 찾아갔다.

여자인 디르케는 아기를 갓낳은 엄마를 가장 잔인하게 괴롭히는 방법을 알았다.

 

"네 아기들의 소식을 가져왔어."

"또 거짓말이죠?"

"그럼 말구. 오늘은 정말인데.. 그냥 혼자만 알고 있어야겠구나."

"잠깐만요. 혹시 정말 암피온과 제토스의 소식을 들은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러면 디르케는 암피온과 제토스가 부랑자들에게 끌려다니며 아주 비참하게 살고 있다고

그럴듯한 비극을 꾸며 들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안티오페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날로 수척해지는 그녀였다.

삶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한 것 정도는 고통의 축에도 낄수 없다는 걸

(글이 지루해도 행복하게 읽어야 한다)

안티오페는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데!! 암피온과 제토스는 정말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까.

다음 글에 잇기로 한다.

(이 대목쯤에서 독자들이 궁금증을 느껴야 쓰는 사람도 보람을 느낀다)

다음 글에서 가장 우애 좋은 쌍동이가 가장 포악한 쌍동이와 맺은 인연..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될까.. 전쟁과 평화 얘기를 계속해보겠다.

 

 

출처 : 자유세상만들기
글쓴이 : coolwis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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