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봄름을울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뼈 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뿌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음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뼈 아픈 후회 / 황지우

■ 처음에 소월문학상 모음 시집에서 위의 '뼈 아픈 후회'를 만난 뒤, 다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 약간 다른 버전의 '뼈 아픈 후회'를 만나고는, 황지우가 왜 그 구절들을 바꿨을까를 생각했다. 자기 속으로 어느 날, 동반자살하자며 팔을 끌 듯, 무방비상태의 독자를 끌고 들어간 뒤 개운찮은 기분이 들었을까. 성기 노출 상태 같은. 우리가 세상에 내놓는 '자기'라는 물건은 늘 불안하다. 내가 고른 상품도 아니고 개선의 여지도 별로 없는 물건. 그러니 최대한 가릴 건 가리고, 없으면서 있는 척 있으면서 없는 척 해서, 깔쌈하게 내놓아야 한다는 그 강박의 경계를, 이 사내가 잠깐 놓쳤다고 나는 생각했다. 고맙게도 놓쳐줘서, 내가 감추느라 비슷하게 골몰하는 그 경계선을 잠깐 남의 일 보듯이 구경했다. 햐. 그 달라진 구절의 가짜 비장함이, 얼마나 시(詩)답잖은지.  (퍼온 글)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람의 자리는 모두가 페허가 되어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봄름을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0) 2007.09.15
얼마나 남았을까  (0) 2007.09.14
이 잔인에 대하여  (0) 2007.08.28
편지  (0) 2007.08.25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0) 200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