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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

학교는 노예생산 공장이다



[한겨레] <존 홀트의 학교를 넘어서>존 홀트 지음·공양희 옮김·아침이슬·1만2000원

1976년 미국에서 출간된 〈학교를 넘어서(Instead of Education)〉(아침이슬)는 30여년 전인 그때 이미 학력위조로 얼룩진 오늘날 한국 학벌사회의 실패를 예견이나 한 듯하다. “온갖 상벌, 성적, 졸업장, 면허증 등 그 의무적이고 경쟁적인 학교교육이라는 지원체제를 갖춘 ‘교육(education)’은 내게 인류의 온갖 사회적 발명품들 중 가장 위험하고 권위적인 발명품으로 여겨진다. 교육이야말로 이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현대적 의미의 노예상태를 유지하는 가장 깊은 토대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생산자요 소비자, 방관자, 기껏해야 ‘팬’ 이외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느낌 속에서 탐욕과 시기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갈수록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내몰리고 있다.”

오랜 학교교육 현장 경험을 지닌 교육혁명가이자 작가, 청소년권리운동 선구자였던 지은이 존 홀트(1923~1985)는 현대의 모든 사회는 과거의 대다수 사회처럼 “몇 안 되는 승자들과 엄청나게 많은 패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학교가 하는 일은 바로 서열 매기기를 통해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되는지를 갈라 대다수 패자들이 한평생 실패자로 살아가는 법을 강제하고 세뇌하는 곳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 사회 학력위조자들은 패자였으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패자로 만든 사회나 부당한 교육체제, 요컨대 현대판 노예제를 뒤엎고 다수를 지옥에서 해방시킴으로써 패자를 없애는 대신 체제의 승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아부하며 단물을 빨고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체제편승 작전을 택했다. 그것도 자신과 체제를 속이는 사기 수법을 써서. 따라서 학력의 노예가 된 그들은 이중삼중의 실패자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실패자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존 홀트는 선언한다. “나의 관심사는 그런 노예상태를 만들어내는 ‘교육’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데 있다. 개선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 만들기’라는 추하고 반인간적인 사업을 끝장내고 사람들 스스로가 참다운 자신을 만들어가게 하고 싶다.” 그가 말하는 ‘교육’은 주로 학교교육을 가리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가 선도했던 홈스쿨링(그는 말년에 갈수록 더욱 가정을 최선의 배움터로 여겼다)조차 부모가 억지로 가르치려 드는 순간 예의 나쁜 ‘교육’이 되고 만다고 그는 말했다. 배움은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교육자는 오히려 배움을 그르치는 방해자이기 십상이다. “교사는 지식을 주지 않는다. 지식은 주어질 수 없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내 경험의 일부를 말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단지 말을 알아들을 뿐이지 경험을 얻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야만 한다. 만약 그가 내가 알고 해본 일 중 얼마쯤을 아예 알지도 못하고 해보지도 못했다면 내 말 속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할 것이다.”

‘사는 것 따로, 배우는 것 따로’가 아닌, ‘하면서 배우기’요 ‘모든 지식은 행동’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식도 늘려가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학교는 소수를 뺀 대다수 아이들을 망치는 ‘두려움’을 양산한다.

1964년에 나온 첫 책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에서 존 홀트는 학교 다니는 아이들 교육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가 노력을 덜 했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교라는 제도,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개선한들 학교는 학교고 감옥은 감옥일 뿐이다. 그 뒤에 쓴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유년시대 탈출: 아이들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학교를 넘어서〉에 이르기까지 그는 줄곧 그 생각을 발전시키고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했다.

그래서 대안은? 독립적인 공부 프로그램을 세워 수영장이나 공설운동장, 지역공동체를 활용해 만남과 모둠놀이에 참여하고 박물관이나 도서관, 콘서트, 대학 강연 시리즈, 특별학교, 프리스쿨, 환경보호단체, 학원 등도 이용한다. 교육통화(분야 제한 없이 무료로 가르칠 사람과 배우려는 사람을 전화 등으로 서로 연결해주는 사업)나 도서관 활용법 등 이 책이 소개하는 재미난 공부 사례들이 무척 흥미롭다. 그것은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며,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축적된 지적 자원들을 최대한 서로 공유하고 활용하면서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사회 전체의 변혁으로 직결된다. 30여년 전 미국 사회에서 펼쳐졌던 홀트의 교육혁명이 지금 한국 사회에 어찌 이리도 절실한지! 미국 사회는 그를 거의 ‘스타’로 받아주었고, 그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 수백만명의 홈스쿨링 인구, 수많은 사립 대안학교들의 성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저력이다.

미 해군 잠수함 부대원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홀트는 핵전쟁을 막기 위한 세계연방정부 운동에 투신했다가 1953년 콜로라도주 사립학교 5학년 담임교사가 됐다.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보스턴 일대에서 학교교사로 일했다. 하버드대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분교 비상근강사도 잠시 하면서 1969년 홀트협회를 세웠다. 오늘날의 프리스쿨, 대안교육, 홈스쿨링, 언스쿨링(탈학교)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