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골절흔
- 소유란 구체화된 자유이다* -
이미산
행위를 끝낸 사내가 여자의 쇄골절흔을 가리킨다
이곳은 내 것이오**
사내의 검지 끝에 힘이 실린다 간절해진다 내 것!
따끈하다 말랑말랑하다 나와 내 것 사이
가까울수록 좋다 만져보고 찔러보고 냄새 맡는
다가갈수록 그러나 멀어진다 멀리서 웃는다
검지에 자꾸 힘이 실린다 따끈따끈한 말랑말랑한
숨 쉬는 것, 관계의 중심, 나란히 누운
두 개의 몸뚱어리, 말이 없는 내 몸 네 몸
내 마음 네 마음, 내 것은 식을 줄 모르는
신념이다 간절하고 간절하여 가늠할 수 없는
깊이다 팔딱거리는 현실이다
네 안에 숨 쉬는 검지 마디만큼의 수많은 내 것들,
복사빛 볼에 멈추어 있는 설렘
연고를 묻혀 상처를 문지를 때 전신을 관통하던 그 지점
저기, 저어기, 불확실한 운명을 향해가던 언덕길, 그때 주고받은 가쁜 호흡의 동맹
수백 개의 바늘에 평생을 찔리며 한 방울 피 맛에 중독되어가는
그 작고 여린 흔들림, 지루한 울음 마비시키는 지독한 향기
검지 끝에 와 닿는 따끈따끈한, 부분이며 전체인
이상한 그림자 두렵고 두려운
그러니 울타리를 쳐야지 작은 문패라도 달아야지
이곳만은 내 것이오, 그래 부디
내 것, 한없이 사소한
*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에서
**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출처: <현대시>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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