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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우체국

화근...이라

 

 

연암이 북경에서 본 것은? 부자 된 허생이 다음에 한 일은?


『열하일기』의 「옥갑야화(玉匣夜話)」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허생전」이 실려 있다. 아내가 늘어놓는 생활고를 듣고, 허생은 변부자에게 돈을 빌려 안성에서는 과일을, 제주에서는 말총을 도거리하여 엄청난 이윤을 남긴다. 이게 그 동안 학자들이 주목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허생의 다음 행보가 이상하다. 허생은 늙은 뱃사공에게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을 본 적이 있는가 묻는다. 사공은, 땅이 기름져 꽃과 과일, 채소가 풍성히 절로 자라는 섬을 일러준다. 그 섬에는 사슴이 떼 지어 다니는가 하면, 물고기는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인간을 경험하지 않은 원시의 땅이다. 이 말을 들은 허생은 변산의 군도(群盜)를 찾아가 살 방도를 일러주며 그들을 설득한다. 도둑 1천 명 역시 경작할 땅과 같이 살 아내가 있다면, 왜 도둑질을 하겠느냐면서 각자 허생에게 받은 1백 냥으로 소를 사고 아내를 얻어 약속한 날 함께 섬으로 들어간다.


알다시피 『열하일기』는 연암이 여행 중 노트한 것을 귀국 후 정리한 것이다.  「허생전」 역시 자신이 원래 알고 있던 이야기, 오랫동안 골똘히 궁리하던 이야기를 다듬어 삽입한 것일 터이다. 한담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연암은 하필이면 도둑을 양민으로 만들어 인간이 닿은 적이 없는 섬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섬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다. 땅심이 좋아 온갖 곡식이 잘 자랐다. 3년 식량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흉년이 든 나가사키(長畸)에 내다팔아 은자(銀子) 백만 냥을 남긴다. 허생은 섬의 남녀 2천 명을 불러 모으고 이렇게 말한다.


애초 나는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왔을 때 너희들을 먼저 부유하게 만들고, 그런 뒤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복의 제도를 정하려 하였다. 한데 땅이 작고 덕이 박하니, 나는 이제 떠날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에게 밥을 먹을 적에 먼저 먹으라 양보하는 것을 가르치라.


이어 허생은 배들을 모두 불태운다. “아무도 가지 않으면 아무도 오지 않겠지.” 돈도 돈 50만 냥만 남기고 나머지 50만 냥은 바다 속에 던져 넣는다. “바닷물이 마르면 얻는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이란 돈은 이 나라에도 소용이 없거늘 하물며 이 작은 섬에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허생은, 섬사람들 중 글을 아는 사람을 모두 배에 태우고 섬을 떠난다. “이 섬나라에서 화근을 끊어버려야지.”


부의 축적도 지식의 지배도 없는 자족적 세계


허생은 배를 불태움으로 섬을 외부와 단절시킨다. 화폐의 절반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부의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글을 아는 사람을 데리고 나옴으로써 지식을 폐기한다. 허생이 지향한 세상, 아니 연암이 지향한 세상은 궁극적으로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경계다. 자립적이면서 자족적인 세계, 축적할 화폐와 타인을 지배할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이것이 『노자』의 소국과민의 경계가 아니라면 무엇일 것인가. 나는 연암이 상상한 유토피아가 『노자』의 소국과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늘 흥미롭게 여겨왔다.


지난 6월 연암의 길을 따라 북경과 열하를 여행했다. 내가 본 중국은 증권에 미쳐 있는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였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팽창은 인간을 하염없이 축소시키고 소모시킬 것이다. 천안문 위에 서서 나는, 거창한 중국을 보았던 연암이 「허생전」에서 소국과민의 섬을 상상한 것을 희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 감명관 교수님의 글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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