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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그리움이멈추는곳

목포 청년 회관

 

 

 

 

 

 

 

 

 

 

목포청년회관(木浦靑年會館) -현 임마누엘 제일교회


분 류: 등록문화재 제43호

명 칭: 청년회관(靑年會館)

소 재 지: 목포시 남교동 80-1

제작시대: 일제시대



신안군청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왼편으로 난 골목길 사이로 조그마한 교회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이 바로 옛 목포청년회관 건물이다.


당시의 목포청년회는 숙원사업으로 1924년 4월부터 회관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통해 남교동 땅 1백평을 대지로 사들였고, 건평 57평의 석조건물을 9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3월 낙성식을 가졌는데 이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건물은 화강암 석조 단층건물로 비교적 단순한 구조이다. 석재 표면은 이시기 만들어진 목포의 대부분 건물처럼 거칠게 마감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면 출입구 상부에는 반원 아치부분이 장식되어 있다.

목포청년회관은 청년연맹의 해체와 사회운동의 침체적 시기를 맞아 주인 잃은 건물로 한동안 방치되게 된다.


⊙ 유적 의의

목포청년회관은 목포청년들의 지덕함양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였던 곳으로 1930년대를 전후한 목포의 청년운동, 아니 민족운동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잊을 수 없는 건물이다. 다행히 전에 이 건물을 사용하던 교회측의 노력으로 청년회관 건물의 외형이나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시 차원에서 이 건물의 보존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관련일화

1943년 일제하에서 팔봉 김기진(八峰 金基鎭)씨 등이 주동이 돼서 『조선 청년(朝鮮 靑年)』이란 잡지가 발간되었다가 2호까지 내고 총독부로부터 발행중지를 당했다. 그 창간호에 박화성(朴花城)여사의 『헐어진 청년회관』이란 단편소설이 실렸다가 전문 삭제되어 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 당시 청년회관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가 하는 내용이 실려있다.


목포청년회관

청년회관(현 임마누엘 제일교회) 앞에서 신간회

창립식때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