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 Szymborska
밤에서 낮으로 가는 시간.
옆에서 옆으로 도는 시간.
삼십대를 위한 시간.
수닭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가지런히 정돈된 시간.
대지가 우리를 거부하는 시간.
꺼져가는 별들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는 시간 .
그리고 - 우리 - 뒤에-아무것도-남지 않을 시간.
공허한 시간.
귀머거리의 텅 빈 시간.
다 모든 시간의 바닥.
새벽 네 시에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네 시가 개미들에게 유쾌한 시간이라면
그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자, 다섯 시여 어서 오라.
만일 그때까지 우리가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림자 / Szymborska
내 그림자는 여왕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어릿광대 같다.
여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
어릿광대는 벽을 향해 몸을 일으켜 세우다가
바보처럼 천장에 머리를 쿵 부딪친다.
이차원의 세상에서는 무엇으로도
그림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 없다.
어쩌면 어릿광대에겐 내 왕궁이 불편할지도.
그래서 다른 역할을 원할 수도 있으리라.
여왕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면
어릿광대는 곧장 바닥을 향해 뛰어내린다.
모든 동작과 역할을 여왕과 분담했지만
공평하게 반반씩 나누진 못했다.
저 단순무지한 숙맥은 스스로의 의지로
과장된 몸짓과 허풍, 뻔뻔함을 택했다.
왕관과 지팡이, 왕실의 가운.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을 지탱할 힘이 없으니.
아, 앞으론 어깨를 움직일 때도 한결 가뿐하겠구나.
아. 앞으론 고개를 돌릴 때도 한결 홀가분하겠구나.
왕이여, 우리가 작별 인사를 나눌 때도
왕이여, 우리가 기차역에 서 있을 때도
왕이여, 언제나 이 시간이 되면
우리의 어릿광대는 철로 위에 길게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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